하이네 여행기

저물어 가는 낭만을 뒤로하고
냉혹한 현실 사회로 눈을 돌린
지식인 하이네
하이네 여행기는 하이네가 4권으로 출간한 여행기 중
북해 ≪연작시 1,2부≫, ≪산문 3부≫,
≪이념_르그랑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2부의 연작시를 지나 북해 3부 산문부터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바다를 여행하는 도중 거친 풍랑을 만난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2부의 시들은 내게 여행의 첫 시작처럼 가슴에 달콤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3부부터는 뱃멀미를 겪듯 이어지는 그의 단상들이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그가 시인이었기 때문일까, 북해 3부와 이념_그르랑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의 글을 계속 읽고 또다시 읽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또, 한 참을 머물며 그의 뜻을 헤아리려 노력해야 했다.
하이네는 산문에서 당시의 시대 상황과 철학, 문학, 종교와 자본주의 비판, 시대의 분열상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있어서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글들을 이해하기는 꽤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역자 후기와 하이네가 살았던 당시 19세기 독일과 유럽의 상황을 찾아보고 정리해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나는 하이네의 글을 통해 18세기부터 19세기 유럽의 상황을 두루 공부할 수 있었다.

니체가 '유럽적 사건' 이라 말했던 하이네
나는 하이네 여행기를 읽을 기회가 생기기 전까지 하이네에 대해 알지 못했고, 헤겔과 쇼펜하우어와 더불어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이네는 1797년 뒤셀도르프에서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당시 활동했던 19세기 유럽은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 많은 변화를 겪던 시대였다.
이 시기 독일은 정치적으로는 프랑스혁명 (1789년 ~ 1794년), 경제적으로는 영국의 산업혁명 (1760년 ~ 1820년)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주의 모순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시민사회를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에서는 자유주의나 합리주의를 반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독일은 아직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정치적으로는 후진적이었고, 문화적으로는 중세 사회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하게 된다. 하이네도 초창기 시를 쓸 당시만 해도 낭만주의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독일인들도 점차 정치에 참여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되고,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낭만주의는 이후 점점 쇠퇴하게 된다. 1830년부터는 정치참여 문학과 저널리즘이 활성화되면서 청년독일파라고 불리는 현실주의 경향의 하이네와 같은 문인들이 활동하기 이른다. 이때쯤 그는 산업혁명 이후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며 언론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1835년 독일의 연방의회의 결정에 의해 청년독일파의 저서 발행이 금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니체의 말처럼, 하이네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서정적인 시를 쓰던 낭만주의를 벗어나 산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와 저항을 담은 글로 독일의 근대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니체가 말한 유럽적 사건은 지식인으로 깨어있는 하이네를 빗대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하이네의 글을 통해 근대 유럽의 모습과 역사적인 프랑스혁명 등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 북해 」 1, 2 부
북해 1,2부의 시들은 마치 바닷가에 누워 져물어 가는 해와 이제 막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는 별을 바라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바다에는 진주가 있고,
하늘엔 별이 있지만,
그러나 내 마음, 내 마음엔,
내 마음엔 그의 사랑이 있네
(중략)
아름다운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의 푸른 천장에
난 입맞춤을 하고 싶어
거칠게 입맞춤하고 거세게 울고 싶어
- 선실의 밤 中
「 북해 」 3부
하이네가 북해의 노르더나이섬에서 쓴 여행기는 일반적인 여행기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그가 시인이었기에 꼭 시인의 언어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북해 여행을 통해 섬원주민들이 자본주의에 물들어 가는 광경 <탐욕스럽게 찡그린 표정>, <육감적인 춤>, <물욕에 사로잡힌 도박>을 보았으며, 그들의 도덕적 타락과 내적인 삶의 교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빗대어 종교를 비판하고, 하노버 귀족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여행기는 그의 사유의 글로 가득했다.
P.106
아무튼 교회의 지배는 최악의 억압이었다. 로마는 항상 지배하기를 원했고, 군단이 무너지면 도그마를 속주로 보냈다. 거대한 거미처럼 로마는 라틴 세계의 중심에 앉아 거미줄로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쌓다. 사람들은 단지 로마의 거미줄에 불과한 것을 가까이 있는 천국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수 세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생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식감과 비참함을 느낀 사람은 이 거미줄을 꿰뚫어 본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들뿐이었다.
P.115
괴테는 명징한 그리스인의 눈으로 어두운 면과 밝은 면 모두를 본다. 그는 어디에서도 감정을 넣어 대상을 채색하지 않으며, 신이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에게 부여한 그대로의 고유한 윤곽선과 고유학 색깔로 그려낸다.
후대에 가서야 이러한 점이 인식되는것은 괴테의 공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워 모든 병들고 분열된 낭만적인 감정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P.120
내 영혼을 사랑하듯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P.139
이 시대의 정신은 혁명적일 뿐만 아니라 두 가지 견해, 즉 혁명적 견해와 반혁명 견해가 융합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결코 전적으로 혁명적이거나 전적으로 반혁명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 언제나 두 가지 견해, 두 가지 원칙, 두가 지 염원이란 의미에서 행동했으며 이것들은 그의 내면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 이념_르그랑의 책 」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네.
하지만 그는 사랑스럽지 않았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네.
- p.167 옛날연극
이념_그르랑의 책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첫 장에 에벨리나에게 책을 바친다. '에벨리나' 그가 북해 3부에 말했듯이 에벨리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야기해도 되는 그 자신의 영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영혼에게 말하는 하이네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의 말들이 모두 은유적으로 느껴졌다.
1장부터 20장에 이르는 [이념_르그랑의 책]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과거와 현실의 시대 상황을 모두 희극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랄라랄 ㅡ랄 ㅡ 랄 라.ㅡ
p.183
그건 제 마지막 노래가 될 것입니다.
제 젊은 날의 밤에 그랬던 것처럼 별들은 저를 바라보고 사랑에 빠진 달빛은 제 뺨에 다시 입 맞추고 죽은 밤꾀꼬리들이 부르는 영혼은 제 하프의 선율처럼 서서히 사라질 것입니다.
p.269
저는 이성에 대한 불행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은 저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저는 이성을 사랑합니다. 이성은 저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습니다.
하이네 여행기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면서도 당대 현실의 시대 상황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기에 예상치 못하게 나에게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독일의 낭만주의를 탈피해 가며 현실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하이네, 자유로운 그의 사유를 따라 북해를 여행하며 나는 괴테와 또 다른 느낌으로 독일 문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진정 '유럽적 사건‘이다.
하이네 여행기는 문학과 철학,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으로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 저자
- 하인리히 하이네
- 출판
- 을유문화사
- 출판일
- 2023.10.30
★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서평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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