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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한국문학

노벨문학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 [생이 폭력 그 자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sosobooktalk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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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생은 폭력의 대상이자 주체다.
생이 폭력 그 자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영혜는 꿈을 통해 자신의 본능에 내재된 식욕의 잔인한 폭력성을 자각한다. 산다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처절한 생의 본질 앞에 마주 선 영혜는 알 수 없는 고통에 깊이 잠식해 들어간다. 그녀가 내면의 질문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그녀의 의식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생이 폭력이라면,
폭력을 벗어날 방법이 죽음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녀의 꿈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경험한 폭력에 기인한다. 육식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고압적인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방관하는 가족에게까지 이른다. 그녀는 외부의 폭력에 꾹 닫은 입으로 항거하지만, 폭력에 대한 저항은 끝내 자기 파멸의 과정 없이는 끝나지 않음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든다.
 

채식주의자 - 식욕


육식과 채식으로 대변되는 생존의 팽배한 대립은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에 건널 수 없는 간극을 만든다. 영혜는 채식을 통해 자신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이를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토로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만 할 뿐, 그녀에게 따스한 햇살을 보내주지 않는다. 그녀는 소화되지 않는 자신의 몸 안의 생명들을 느끼며 세상과 점점 더 분리되어 간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외부 세계 화자인 남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남편의 시선에서 영혜는 그저 고분고분한 아내여야 했기 때문이다.

 

몽고반점 - 성욕


식욕 다음으로 가장 강렬한 욕구는 성욕이다.
몽고반점의 화자는 형부로 예술을 매개로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실현의 방식이 충동적인 성과 엮일 때 두려움의 금기를 넘어선 인간은 또 한 번 자기 파괴의 길을 가게 된다. 인간의 언어로 번식은 성을 이야기하지만, 식물의 번식은 성이 아닌 예술의 영역이다. 꽃이 지고 피고, 생명이 퍼져나가는 방식은 인간의 성에 대한 개념으로는 접근이 어렵다. 번식은 생존의 영역이자, 예술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이는 범죄와 외설에 가깝게 취급되기에 정신병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벗어나 생명의 영역으로 가려면 태곳적, 아기 때로 돌아야 가야 한다. 원초적 근원이 되는 씨앗 같은 몽고반점으로. 처음 발화(發花)가 되는 그 지점으로 말이다.

어쩌면 몽고반점은 남성의 성적 판타지 중심에서 벗어나 태고의 생명이 잉태되는 의미로의 여성, 최초 여성으로 회귀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와 같은 태곳적으로의 환원은 순진한 이야기이자 또 다른 폭력에 짓밟히기 십상인 세계였음을 역설적으로 다시 한번 자각하게 만든다. 

 

나무불꽃 - 대립의 통합 (공존)


내부와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러나 세상은 안전한 보편성을 요구하기에, 거꾸로 뒤집어 세상을 보는 영혜를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무너뜨리지 않으면 생성할 수 없는 세계, 영혜가 거꾸로 세상을 보고 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내려 가는 자신의 생각으로 싹을 틔워보려 해도, 세상은 그것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생명을 살리려 하는 영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족도 없을 것이다. 영혜가 나무가 되고자 하는 바람은 그저 소멸을 통한 생성의 과정이자 폭력에 항거하는 몸무림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영혜는 자기 파괴의 길을 가는 인물일 뿐이다. 나무불꽃의 화자인 언니 인혜는 영혜와 대척이 되는 보편적인 인간상으로 영혜와 달리 아버지의 폭력에 대처할 줄 알고, 남편에게도 순응하며 묵묵히 삶을 이어갈 줄 아는 인물이다.

나부불꽃에서 작가는 영혜와 인혜를 통해 삶의 치열한 대립의 접점을 봉합하려 한다. 영혜가 목숨을 걸고 폭력에 맞섰다면, 인혜는 쉽게 수술이라는 편리한 방법으로 삶의 고민을 도려내며 모성의 안전지대로 돌아간다. 하지만 인혜가 회피하고자 하는 생의 문제의식을 물리적으로 쉽게 도려냈다 해도 그녀에게 검은 구멍으로 자리 잡은 그림자는 마음 한구석에서 언제까지고 그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죽음의 극단이 아닌 생을 살고자 한다면
피할 수 없이 괴로워도 감내해야만 하는 그림자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비폭력을 주제로 생 자체가 폭력이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그 안에서 치열하게 충돌하며 깨어지는 수많은 인식의 파편들을 느끼게 해 준다. 마치 시처럼 예술처럼. 고통스러운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온몸을 불사르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나무처럼 훨훨 불타 결국 검은 자국만 남기고 사라져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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