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1989년에 처음 발표되어 33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4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녀의 전남편이었던 '구름 속의 산책'을 제작한 알폰소 아라우 감독은 1992년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원 제목은 Como agua para chocolate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극한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티타와 페드로의 금기된 성적 욕망이 잘 표현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 제목의 느낌과 다르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으로 영화가 먼저 상영되고 유명해졌기에, 영화의 제목과 동일하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이 되었다. 이 말은 사랑에는 달콤함 뿐만 아니라 이면에 자리 잡은 쌈싸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뜻을 전달해 주지만, 원 제목이 갖고 있던 몽글몽글하게 끓어오르면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줄거리
티타는 백리향 냄새와 월계수 잎사귀향, 마늘과 양파향이 가득한 부엌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마마 엘레나의 막내딸로 태어난다. 그녀가 태어나는 날 아버지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고, 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는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티타는 어머니의 관심 밖 공간인 부엌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음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나차의 손에 자라게 된다.
막내딸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
그녀의 집안에는 막내딸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못한다는 가혹한 관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관습은 어머니에게는 안정적인 노년을 보장했지만, 관습을 이어야 하는 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기에 사랑을 할 수도 없고, 또 자식을 낳을 수도 없기에, 가족이 없는 상태로 노년을 맞아야만 했다. 관습대로라면 그녀의 노후는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관습을 이어야 하는 티타는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더욱, 불합리하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리는 집안의 관습에 분노하고 슬퍼한다.
마마 엘레나는 티타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시 그녀에게 주지시켰지만, 가부장적인 마마 엘레나의 집안 부엌에서도 스며드는 사랑의 향기는 피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티타는 페드로라는 청년에게 청혼을 받으며 그와 진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게 된다.
금기된 사랑
둘은 서로 사랑해 결혼하려 하지만, 마마 엘레나의 반대로 페드로는 사랑하지 않는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티타 옆에서 그녀를 평생 볼 수 있기를 희망했던 페드로로 인해 티타와 페드로는 한 집안에서 서로에게 욕망을 느끼지만 다가설 수 없는 형부와 처제 사이로 남게 된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장마다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멕시코 요리는 금기된 사랑의 성적 욕망을 분출하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한 여성의 삶과 다채롭게 엮여들며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내용을 더욱 맛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요리책처럼 다양한 레시피와 이색적인 요리 음식들이 결합된 사랑의 감정은 마법과 같은 현상으로 표현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표현된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문학적 기법으로 현실세계의 인과법칙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는 말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잘 살아나 있고, 요리와 문학을 결합한 요리문학의 장르를 새로 개척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마술적 리얼리즘인 이유는 티타가 만든 음식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페드로와 언니 로사우라의 결혼식을 위해 티타가 눈물을 머금고 만든 차벨라 웨딩 케이크 편에서는, 그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이 모두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슬픔과 좌절을 느끼는 동시에 식중독 증세를 일으키게 되는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사우라의 결혼식은 티타가 만든 케이크로 인해 엉망이 되고, 이로 인해 티타는 마마 엘레나에게 오해를 받고 뺨을 세차게 얻어맞게 된다.
페드로가 어느 날 티타를 위해 선물해 준 분홍장미꽃은 그녀의 가슴 피로 붉게 물들게 된다. 피로 물들여진 장미로 그녀는 식민지 전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의 메추리 요리를 만들게 되는데, 티타가 페드로를 생각하며 만든 음식이었기에 티타의 사랑이 스며든 메추리 요리는 로사우라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녀의 언니 헤르트루디스에게는 온몸의 관능을 불러일으키며 달아오르는 성적욕망을 품게 만든다. 결국 그날 사랑의 열정이 듬뿍 담긴 음식을 먹은 헤르트루디스는 자신의 온몸에 흐르는 관능과 육체의 욕망을 잠재워줄 남자를 만나 집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티타는 음식을 매개체로 마술을 부리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장미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냄새에 자신을 체취를 녹여내어 달아오른 자신을 페드로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페드로는 티타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관습에서 구해줄 정도의 용기를 갖지 못했고, 그런 늘 눈치만 보는 페드로에게 티타는 언제나 실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로베르토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고 애지중지 키우게 된다. 그러나 마마 엘레나에의 잘못으로 로베르토가 죽게 되고, 그녀는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또 다른 남자 존 브라운 박사를 만나게 된다.
존 브라운 박사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녀를 안락하게 해 그녀는 그에게서 페드로와 같은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우리 할머니는 우리 모두는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가
없다고 하셨죠.
불을 댕기려면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한데,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어요.
촛불은 펑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불꽃은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으로,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의 불도
지필 수가 없게 됩니다. "
그래도 그녀는 따뜻한 남자인 존 브라운 박사와 결혼하려 하지만, 결국 그가 자신을 영혼을 채워줄 불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티타는 알게 된다.
그녀와 존 브라운 박사 사이를 질투하는 페드로, 동생과 남편의 사랑을 지켜봐야 하는 로사우라, 페드로와 존 사이에서 방황하는 티타는 모두 불행하다. 한 집안의 잘못된 관습이 여러 사람에게 불행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것을 탈피하는 것은 외부의 이방인, 마마 엘레나가 숨겨둔 비밀이었던 불륜으로 낳은 딸, 핏줄이 다른 헤르트루디스만이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그녀는 멕시코 혁명군에 가담함으로써 남성들만이 차지하는 공간을 허물어 트리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변모하게 된다.
마마 엘레나는 죽을 때까지 티타를 사랑해 주지 않았지만, 티타는 과거 사랑에 실패했던 마마 엘레나의 불행한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티타의 마음과 달리 티타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마마 엘레나는 죽음 이후에도 티타와 페드로 사랑을 관습에 어긋난 천박하고 더러운 사랑이라 비난하며 티타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티타는 로사우라가 딸인 에스페란사를 낳게 됨으로써 페드로에게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마음 먹지만,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로사우라는 자신이 낳은 둘째 딸, 에스페란사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불행한 관습에 희생시키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로사우라는 죽음을 맞게 되고, 티타는 자신을 불행하게 했던 집 안의 오래된 관습을 끊어내며 조카를 존 브라운 박사의 아들과 결혼시키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던 오래된 관습과 그녀를 억압하던 어머니, 언니에게 느꼈던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진 티타는 페드로와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이십이 년이 흐른 뒤의 지금의 페드로와 그녀의 사랑은 찰나의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사그라지게 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집안의 서열이 가장 낮은 여성을 희생시키는 잘못된 관습과 무차별하게 이루어지는 폭력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다양한 멕시코 요리와 함께 티타의 감정이 잘 섞여들여 이야기가 완성되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사랑과 음식의 절묘한 결합과 함께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자했던 한 여성의 애환이 제목대로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저자
- 라우라 에스키벨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0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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