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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현대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by sosobooktalk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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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저자
정지아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9.02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사람의 죽음을 강렬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전달하며 시작한다. 1인칭 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화자로 등장하는 딸은 '빨치산' 아버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그녀는 3일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해방 후의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그들과 아버지의 뒤얽힌 인생사를 듣게 된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살아생전 모습을 반추하게 된다.

그 안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국 패배한 남자, 감옥생활과 모진 고문으로 몸이 망가졌음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남자, 자신의 신념을 실생활에서도 평생 지켜나간 굳건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를 떠나, 불운했던 한 시대에 애달픈 삶을 살다 간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또 한 사람, 평생 지워지지 않는 ’빨갱이’ 라는 수식어를 단 아버지 밑에서 자라야 했던 그녀의 상처 어린 마음이 담겨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는 빨치산으로 낙인찍힌 사람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목숨처럼 지키던 사람이었다. 
가족보다 인민을 우선시 하고, 목숨을 걸고 혁명에 가담할 정도로 용맹한 사람이었지만, 생계를 위한 노동에는 절대 맞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로서도 가장으로서도 딸인 그녀에게는 늘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친다.

너무나 솔직하게 딸의 외모를 평가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초연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딸로 현실주의자로 강인하게 살아가야 했던 화자는 그의 비장한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더없이 가벼운 존재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그녀에게 아버지란 사람의 존재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외려 가볍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가 가진 사회주의 이념의 무게만큼 더없이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빨갱이 아버지를 둔 딸로, 가슴속에 숨겨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이 세상의 편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무기는 사실 가벼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해방 이후, 시대의 진중함을 비껴간 웃음과 유쾌함이 있다.
가까이하기에는 역사적으로 시대와 개인 모두에게 벌려놓은 상처가 너무 큰 탓인지, 시종일관 유쾌함으로 진중함의 무게를 지워버린다. 결코 무거운 진중함으로는 절대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의 아픔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낸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한 실패한 혁명가로서, 얻은 거라곤 가족들의 원망과 불임된 몸, 사팔뜨기기 된 눈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던 어린 딸은, 1980년 8월 15일 감옥생활을 끝내고 나온 아버지와 마주한 자리에서 더 이상 자신이 아버지를 동경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버지 역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떨어져 있던 6년의 세월만큼 서로의 거리는 멀어져 있었다.

이념의 간극은 너무도 커서, 그 틈사이로 가까이 가려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시대가 말해주었듯이, 그녀의 아버지처럼,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시간은 청춘의 싱그러웠던 시절을 지나 죽음의 사선을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데 엃히고설킨 아버지의 인연의 끈들을 풀어 주게 되며, 아버지도 운명의 그늘에서 해방되게 된다. 그리고 딸도 비로소 원망의 대상이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현존하는 이념의 대립보다 더 중요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가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서로가 지닌 시대의 아픔을 함께 위로하며, 이념의 간극을 딛고 서로 화합하려면 또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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