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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세계문학

[러시아문학] 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by sosobooktalk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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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모든 행복한 가족은 닮은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한 가족은 각각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가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쓴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연애소설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제시하는 계도적인 책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러시아 사회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알 수 있는 사회소설로도 읽을 수 있겠다.

1972년 안나 피고로바라는 실제 귀족여성이 기차역에서 자살한 사건에서 착안한 안나 카레니나는 안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한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안나'와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레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안나의 사랑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레빈의 비중도 상당해 각자를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1862년대 19세기 급진적인 귀족과 지식인 중심의 자유주의파는 결혼을 진부한 제도로 여기고, 청년귀족과 학생들은 농촌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했던, 1870년대 중반에는 유럽사회의 경제적 발전의 영향으로 알렉산더 2세(1818년 4월 17일 ~ 1881년 3월 13일)의 통치하에 러시아 국내에서도 조금씩 자유주의의 바람이 생겨나고 있었다. 자유주의와 러시아 전통을 고수하려는 슬라보주의의 잠재된 갈등요소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서사에서 사랑을 중점 테마로 본다면, ‘안나와 브론스키' , '레빈과 키티' 두 커플의 사랑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두 커플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되어 독자로 하여금 이원론의 선악 구도 안에서 사랑과 결혼 제도를 고찰하게 만든다. 

 


 
"(.. 중략) 아내는 점점 늙어가고 자네는 생명으로 충만해 있어. 미처 익숙해질 겨를도 없이, 자네는 이미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설사 자네가 아무리 아내를 존중한다 해도 말이지. 그때 갑자기 사랑이 찾아온 거야. 그럼 자네도 무너지고 말걸. 무너지고 말고!"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어조로 말한다.
 
"그럼 무너지고 말고." 오블론스키가 계속해서 말한다.
 
"빵을 훔치지 않으면 되잖아"  레빈의 말에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웃음을 터트렸다.
 
" 호, 도덕군자가 나셨군. 여기 두 여자가 있어. 한 명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해. 그 권리란 자네가 그녀에게 도저히 줄 수 없는 자네의 사랑을 뜻하지. 또 한 여자는 자네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으면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 자네라면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 처신하겠어? 바로 여기에 끔찍한 드라마가 있는 거야." 
 
"만약 그 문제에 대한 나의 고백을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난 거기에 드라마가 있다고 믿지 않아. 그 이유는 말이지, 내 생각에 사랑은....., 두 사랑은, 기억해? 플라톤이 [향연]에서 정의한 두 가지 사랑 말이야. 아무튼 두 사랑은 사람들에게 시금석 같은 역할을 하지. 어떤 사람은 한쪽 사랑만 알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쪽 사랑만 알아. 그리고 육체적 사랑만 아는 사람들이 꼭 쓸데없이 드라마를 운운해. 그런 사랑에 드라마란 있을 수 없어. 그리고 플라토닉 한 사랑에도 드라마는 있을 수 없어. 그런 사랑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순수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순간 레빈은 자신의 죄와 지난날에 겪은 내면의 투쟁을 떠올렸다.
P. 98(1권)
 
"자네는 매우 순수한 사람이야. 그건 자네의 미덕이자 결점이기도 하지. 자네는 순수한 성격이라 인생 전체가 순수한 현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자네는 공무활동을 경멸해. 자네는 행위와 목적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또 자네는 한 인간의 활동이 언제나 목적을 갖기를, 사랑과 가정생활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지, 하지만 그런일은 불가능해.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
P.99 (1권)

 


 

사람들은 각 자 자신의 세계 속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인식과정을 통해 옳고 그름, 빛과 그림자로 세상을 판단하려 한다.

이는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오블론스키, 레빈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오블론스키는 사랑에 대해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는 반면, 레빈은 순수하다 느끼는 정신적 사랑에 우위를 두려한다.


이처럼 사랑 하나만 봐도 사람들의 가치관은 매우 다르기에 규정될 수 없는 사랑은 혼란스럽다.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결혼이라는 사회규범은 이 본능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로인해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는 매번 고심의 대상이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만나기 전까지 모범적인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브론스키를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안락한 세계에서 탈피해 기존 세계의 사람들과 거리를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일은 전에도 있었잖아. 그런데 난 어째서 예전에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안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오늘 유난히 짜증을 부린 걸까? 사실 우스워. 그녀의 목적은 선행이고 그녀는 그리스도교 신자잖아. 그런데 늘 화만 내. 게다가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적이야.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정신과 선행을 위협하는 적이지.'
P.240 (2권)
 
 
페테르부르크에서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하던 브론스키는 안나와 달리 자유로운 인생관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일부일처제를 신봉하고, 처녀의 순결을 강요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사람들로 분류한다. 그에게 있어 사회규범 보다 중요한 것은 정욕적이고 생동감 있게 산다는 것이었기에, 군인으로서의 신념도, 자신의 안위도 버릴 만큼 진심으로 안나를 뜨겁게 사랑한다. 
안나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이처럼 브론스키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본능과 감정에 치우친 사랑보다 가정과 체면을 중시하는 이성적인 안나의 남편 카레닌 역시도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로, 브론스키와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까지 낳은 안나를 종교적인 광의의 사랑으로 용서한다. 카레닌은 이 용서의 과정을 통해 기쁨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사랑은 남녀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평생 따르고자 했던 그리스도교의 율법이 그에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명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수에 대한 사랑과 용서라는 기쁜 감정이 그의 영혼을 채웠다.
P.373 (2권)

안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브론스키를 사랑한 댓가로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벌을 받고 죄책감을 벗고 싶었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하는 남편을 통해 오히려 도덕적 모멸감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이에 자신이 가진 수치심과 죄책감을 인정한 안나는 이혼을 해준다는 남편의 관대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행해질 요소를 안은 체 브론스키와 막연한 도피 행각을 벌인다.
 
브로스키와 안나는 한동안 사람들을 피해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를 돌아다니며 잠시 행복을 느끼지만 그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안나는 떠나온 자신의 첫 아이 세료자를 그리워하며 세료자와 브론스키를 둘 다 얻고 싶었지만, 둘의 양립은 불가했기에 늘 불안한 행복 속에 고통을 받게 된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얻은대신 주변의 냉대와 멸시에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사교계에서도 거부당하면서 외로이 고립되고 만다. 그에 반해 잊었던 자유를 찾고자 하는 브론스키는 안나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보인다. 이에 안나는 새로운 삶을 잘 살아보고자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며 집중력을 분산시키려 했지만, 삶은 그녀의 뜻과는 달리 삶에 유일한 목적이 된 브론스키에게 점점 집착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은 현실과 부딪치며 서서히 변질되어 간다.

‘난 사랑을 원해. 그런데 사랑이 없어.
그러니 모든 게 끝난 거야.’
P.407 (2권)

안나는 자신과 상대의 변해가는 사랑을 목도하며 사랑과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끼고 자기 연민과 혐오에 빠져버린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수치심과 죄책감, 사랑의 불신에서 영원히 도망치는 것으로 자신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생을 살아가려 애쓰던 안나도, 기차역에 뛰어들며 찰나의 순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는 안나도 모두 불안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 난 몹시 불안해. 그리고 이성이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인간을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 난 벗어나야 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자 모든 것을 보는 게 끔찍하기만 한데, 촛불을 꺼도 되지 않을까?’
P.452 (3권)


계속된 의심과 불안에 휩싸인 안나의 모습은 톨스토이가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불완전성을 강렬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안나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에 함몰되어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갈등하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빠져 허덕인다. 
 
죽음을 택한 안나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다시 삶으로 이끌려 하지만, 안나는 그 힘을 뿌리치고 만다. 마지막 순간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비로소 안나는 자신의 불완전한 이성을 깨닫고 신에게 구원을 바라는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P.456 (3권)


안나의 죽음은 브론스키를 깊은 슬픔에 빠트리고,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무거운 책임을 지며 영혼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안나가 기차역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브론스키를 만나며 느낀 불안과 브론스키와 영원한 헤어짐을 맞는 기차역에서의 장면은 마치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부하기 힘든 힘이 느껴진다. 기차의 선로처럼 삶에 정해진 괘도가 있다면 인간의 삶이 보다 더 편리해지겠지만, 정해진 괘도가 없는 삶은  우연의 교차 속에서 결국 우리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한편, 브론스키에게 거부당한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을 사랑해준 레빈을 만나 결혼한 키티와 그녀를 사랑하는 레빈은 어려운 결혼생활에서도 서로를 지지하며 사랑의 역경을 이겨낸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다하며 부부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가는 키티와 레빈의 모습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안하고 파괴적인 사랑과 대비되어 더욱 성숙해 보인다. 
 
그러나 레빈과 키티의 사랑이 더 성숙해 보인다 한들 과연 누가 안나의 사랑을 심판할 수 있을까?

사랑은 정의할 수 없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개인 고유의 영역이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던 그건 그녀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의심은 인간의 연약함에 깃든 고유한 특성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2권에서 사제는 말한다. 

톨스토이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불안한 의식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인간 내면에 벌어지는 복잡한 심리와 고뇌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 앞에서 신을 찾고야 마는 인간, 불완전하고 모순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느껴지는 안나 카레니나는 당대 러시아 사회의 계급 간의 이해관계와 종교, 철학, 결혼제도,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톨스토이는 삶을 세밀하게 탐구하며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도 인간의 불안한 이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강건한 삶의 고정된 진리를 찾아 정착하려 한다. 그리하여 그는 레빈이라는 인물을 통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인간을 경험에 입각한  ‘본능'을 내세워 다시금 선(善)한 관념의 세계로 이끈다. 무의미한 생을 견디지 못하는 불안한 인간이 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적 지지자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듯 말이다.

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언제나 도덕적인 삶으로 환원시킨다.

“ 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하느님이라는 개념 속에서 길러지고 그리스도교가 내게 준 영적인 행복으로 나의 삶을 채웠으면서도, 그런 행복으로 충만하여 그것에 의지하며 살았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한 채 파괴하고 있어.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을 스스로 파괴하고 싶어 하는 거지.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닥치자마자,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린 아이들처럼 난 하느님에게로 나아갔어. “
P.524(3권)

흑백이 명확한 관념의 세계는 삶을 보다 더 단순하게 만든다. 하지만 변이가 진화의 과정이듯 인간의 불안과 모순이 사회의 균열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갈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때로는 가치에 함몰되는 선악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간사회를 조망해 볼 필요도 있겠다.
 
 

P.479 (2편)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백작부인."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탄식하며 말했다. 
"하지만 백작부인에게 이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합니다."

 

P.406 (3편)
“존중은 말이죠. 사람들이 사랑이 있어야 할 텅 빈 자리를 감추기 위해 궁리해 낸 거예요. 만약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그게 더 정직해요. “

 

P.446 (3편)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증오가 시작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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