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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세계문학

'천진성'의 상실 위에 피어나는 인류애의 향기 '파리대왕'

by sosobooktalk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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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성'의 상실 위에 피어나는

인류애의 향기 '파리대왕'

 
 
 
민음사 부록에 수록된 미국판 캐프리코온 Capricorn 문고의 1959년도 제11판의 해설서를 참고해 보면,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이 '파리대왕'의 주제라고 윌리엄 골딩이 적었다고 쓰여 있다.
 
「 P.320

사회의 형태가 개인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외관상 아무리 논리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정치체제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모럴이다. 마지막 구조되는 장면을 제외하고선 전편이 상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섬에서의 어린이들의 상징적 생활과 똑같은 악으로 얽혀 있다. 장교는 사람 사냥을 멈추게 한 후 어린이들을 순양함에 태워 데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순양함은 이내 똑같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적을 사냥질할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순양함은 누가 구조해 줄 것인가?
 
골딩의 말대로 과연, 인간 본성의 문제가 개인의 윤리적 차원의 문제이자, 결함일까? 그것이 사회의 결함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걸까? 이는 좀 더 고민해 볼 문제라고 본다.
 
생명의 기본 조건은 생존과 번식이다.
생존을 전제로 모든 생명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이것이 이제까지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밝혀진 과학의 정설이다. 
 
생명은 선악이 없고, 그저 생존과 번식만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다.
우리는 본능 외에 타고난 개성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닌 본성은 고정된 것이 아닌 변동적이라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본성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 윤리, 종교, 사회규범이 바로 문명이다. 문명은 인간의 본성을 조절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규범 역시도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영향과 동일한 결과치를 내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양식은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과 가치관, 기질과 성향, 목적 등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발현된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아이들의 하나의 우화적 사례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본성, 그것의 결함을 다방면에서 논하기는 어렵지만, 파리대왕을 통해 인간 본성의 한 단면과 그 단면이 사회에 미치게 되는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불시착


가상의 핵전쟁 시대, 만 5세부터 만 12세가량의 소년들을 태운 비행기가 태평양 근해의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파리대왕은 이 소년들이 고립된 섬에서 자기들끼리 생활하며 어른들에게 구조되기까지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두 소년의 설정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외형으로도 분리한다. 문명을 대변하는 지도자 랠프는 금발의 건강한 체격의 준수한 소년이다. 이에 반해 야만을 대표하는 잭은 랠프와 비슷한 체격이지만, 붉은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못생긴 얼굴이다. 이는 문명과 야만을 바라보는 작가의 선입견도 일면 포함 됐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에 더불어 심한 근시와 천식, 놀림받는 무거운 몸을 가졌지만 현명한 지성을 갖춘 돼지, 인간의 일면을 꿰뚫어 보는 사이먼, 몸집은 잭 다음이지만 털털하고 언제나 싱글거리고 있는 소년 모리스, 침울하고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의 로저, 주변 상황에 휩쓸리는 쌍둥이 샘과 에릭, 이외에도 빌, 로버트, 해럴드, 헨리, 조니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랠프와 잭을 중심으로 상황을 만들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문명으로 복귀를 꿈꾸는 랠프와 야만으로 회귀하는 잭 메리듀


무인도에서 문명의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인물은 랠프와 돼지(별명)다. 랠프와 돼지는 자신들이 주워온 소라를 가지고 소리를 내어 흩어져 있던 소년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 시작한다. 소년들이 전부 모인 후,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승원 소속 특대생 성가대원이자 지휘자인 잭은 자신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 말하지만, 소년들은 랠프와 잭 중에서 랠프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택한다.  

P.30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준 것은 돼지였고, 한편 누가 보아도 지도자다운 소년은 잭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랠프에게는 그를 두드러지게 하는 조용함이 있었다. 몸집이 크고 매력 있는 풍채였다. 뿐만 아니라 은연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소라였다. 그것을 불고 그 정교한 물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화강암 고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 - 그런 존재는 별난 존재였던 것이다. 

 
 
랠프는 지도자로 선출됐지만, 소년들 사이에서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잭을 위해 기존대로 잭이 성가대원들의 리더로 남을 수 있도록 '사냥부대'를 만들어 그와 자신의 역할을 분리한다.
 
 


 

소라와 봉화, 오두막

 

P.60
"난 소라를 들고 있어."  하고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돼지가 말하였다.
"난 얘기할 권리가 있어."

 
 
랠프가 무인도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소라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발언권이다. 누구나 평화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로 인해 권력은 한 곳에 독점되지 않고 공동체에게 분배된다. 그러나 랠프는 개인의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려 하기 때문에 일이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다양한 발언이 가능하기에 때때로 서로의 의견이 분분해지기도 한다. 

 

P.60
"너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하고 잭은 경멸조로 말하였다.
"너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어."
"그의 안경을 활용했잖아?" 하고 검정 묻은 볼을 팔로 씻으면서 사이먼이 말하였다.
"그는 그걸로 도움이 되어준 거야."

 
 
각 자의 역할이 분리되고 랠프가 지도자로 선출된 뒤, 돼지의 도움을 받아 그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오두막을 짓고, 외부에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 불을 지펴 봉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질서가 없는 아이들로 인해 봉화를 만들려던 첫 시도는 실패한다. 그들이 만들던 봉화의 불씨는 크게 산불로 번져 한 어린 소년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돼지를 제외한 아이들은 사라진 아이가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
 

P.65
돼지는 화가 치밀었다.
"난 소라를 들고 있어. 내 말을 들어봐! 제일 먼저 우리가 했어야 할 일은 바닷가에 오두막을 짓는 거였어.

밤엔 바닷가가 굉장히 추웠어. 그런데도 랠프가 '봉화'라고 하자마자 고함을 치면서 이 산으로 몰려왔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야!"

"순서를 가려서 중요한 일도 하지 않고, 또 온당한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구조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돼지는 언제나 랠프 곁에서 그가 올바른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랠프를 도와 무리를 안전하게 이끄는 것이 돼지가 주변 상황에 적응해 살아가는 본인만의 생존력이었고, 랠프 역시 지도자로서 부족한 자신의 분석력과 판단력을 메꿔주는 돼지를 이용해 스스로의 생존력을 높인다. 랠프와 돼지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서로 필요에 의한 공생에서 비롯되는 연대의식은 공동체의 생존을 유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변장술과 사냥, 두려움의 존재


섬에서 얼마동안은 소년들 모두 각 자의 자리에서 흥미로운 모험을 하듯 섬을 탐험하고, 자신의 역할들을 수행해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들마다 구조에 대한 필요성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 환경의 적응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P.91
마스크는 이제 하나의 독립된 물체였다. 그 배후로 수치감과 자의식에서 해방된 잭이 숨어버린 것이다. 

 
 
잭은 힘의 논리에 따라 사냥이라는 방법을 통해 무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고, 본인의 능력을 입증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첫 사냥의 실패로 무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더욱  멧돼지 사냥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 후부터는 자신의 능력에 한껏 도취된다. 그의 사냥법 역시 빠르게 진화한다. 그는 변장을 통해 짐승의 눈을 속이고 자연에 적응해 가면서 윤리라는 문명의 외피를 하나씩 벗겨낸다.


P.101
그는 사냥의 경험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멧돼지를 모두가 둘러쌓을 때 그들이 알게 된 사실, 한 살아 있는 생물을 속이고, 자기들의 의지를 거기에 관통시키고, 맛있는 술을 오랫동안 빨듯이 그 목숨을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P.128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다는 거야."
망망대해에 펼쳐져 있는 바닷물과 그 너머의 대양,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지의 보랏빛을 그들은 생각했다.

 

P.170
"돼지를 죽여라! 목을 따라! 돼지를 죽여라! 때려잡아라!"
랠프도 가까이 다가서려고 승강일 하고 있었다. 갈색의 연약한 살점을 한 줌 손에 넣고 싶었다. 상대를 눌러 해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였다.

 
 
작가는 다분히 잭을 랠프보다 더 권력 지향적이고, 사나운 기질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랠프 역시도 충동적인 본능을 내재하고 있으며, 그가 자신의 충동을 자세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는 옷과 같은 얄팍한 문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안한 상황에서 랠프는 잭이 가진 사냥능력을 업신여기게 되고 그와 갈라서는 계기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돼지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한다.
 

P.189
잭은 사냥부대 쪽으로 향하였다.
"그는 사냥꾼이 못돼, 우리에게 고기를 대주지도 못했고, 대주려고도 못했을 거야. 그는 반장도 아니고 도대체 그에 관해서 우리가 아는 바도 없어. 그는 그저 명령이나 내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저 복종해 주기나 바라고 있어. 이 따위 얘기는.."

 
 
잭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목표를 빠르게 성취한다. 그는 공동체를 배불리 먹여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영역으로 소년들을 끌어들이고, 짐승이라는 불안을 매개로 미신적인 종교를 만들어 공동체를 결집한다. 종교는 권위를 만들고 다른 소년들보다 성가대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외려 불안에 더 쉽게 휩싸인다. 그들은 불안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포악해진다. 

두려움에 빠진 이들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배불리 먹여줄 강인한 지도자를 찾는다. 강인한 지도자는 단결력과 체계성을 앞세워 외부의 위협에 쉽게 대비하고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그 체계성의 이면에는 때때로 공동체에 대한 폭력과 위압이 적용되기도 한다. 

규율이 필요한 군대나 전쟁 상황이 아닌 한 이러한 형태의 지도자는 공동체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게 된다. 또 이렇게 강건한 체제 하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지배적이기에 약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P.214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에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소년들 모두가 섬에 있는 미지의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있을 때, 사이먼은 숲 속에서 홀로 속삭이는 짐승의 소리를 듣는다. 무의식의 저편에서 들리는 파리대왕, 즉 죽음과 동반되어 들리는 짐승의 말소리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P.223
잭이 입을 열었다.
"물 좀 줘"
헨리가 그에게 야자열매 껍질을 갖다 주어 잭은 그 깔쭉깔쭉 한 테두리 너머로 랠프와 돼지를 지켜보면서 물을 마셨다. 그의 봉긋이 올라간 갈색의 팔 근육에는 권력이 자리 잡고 있었고, 어깨 위에는 권위가 걸터앉아 그의 귀에다 대고 원숭이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공포의 근원 - 짐승의 존재 

 

P.228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그놈을 죽여라!

 

아이러니하게도 소년들이 두려워하는 미지의 괴물은 바로 자기 자신과 같은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지나친 허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는 실체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채, 그저 인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공포의 환각에 취해 자신과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비극을 일으키는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본성이 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본질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광기 때문이라 말한다. 역사적으로도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중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왜 그 둘은 공존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생존'이 결국 살아남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존의 공포감은 이미 우리 유전자에 깊게 뿌리 박혀, 악의 우월성으로 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P.257
“나는 두 손으로 이 소라를 들고 그 녀석에게 갈 테야. 이것을 내밀 테야. 자, 보아, 하고 난 말할 테야. 너는 나보다 기운도 세고 나처럼 천식을 앓고 있지도 않아. 너는 두 눈이 멀쩡해서 모든 것이 잘 보여. 선심을 써서 안경을 돌려 달라는 게 아냐. 사나이답게 굴라고 하는 것은 네가 기운이 더세기 때문이 아니야. 옳은 것은 옳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안경을 돌려줘. 내게 돌려줘야 해. 난 이렇게 말해 줄 테야. “

 
 
파리대왕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부분은 사이먼과 돼지가 죽는 장면이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줄 알고, 성찰을 통해 인간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사이먼, 옳은 것에 대해 옳다 얘기할 줄 아는 지성과 용기를 갖춘 돼지의 죽음은 파리대왕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문명의 윤리를 저버린 잭과 로저는 사이먼과 돼지를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랠프 역시 끝까지 죽이려 하지만, 때마침 그들을 구조하러 온 어른들에게 발견되는 장면으로 파리대왕은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자신의 잃어버린 천진성을 자각하며 눈물 흘리는 랠프는,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작가 본인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죽은 돼지를 위해 흘린 눈물은, 아마도 전쟁에 참여해 죽어간 이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애잔함일 것이다.
 

무엇이 인류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가?

 
파리대왕은 인간의 본능에 잠재된 생존을 향한 힘을 악마로 규정하려 한다. 곤충의 왕, 죽음의 냄새를 쫓아 그 주변을 맴돌며 살아가는 파리떼처럼,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존이라는 영역에서 항시 다른 생명을 빨아들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악의 근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5년 동안 해군생활을 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여했다고 하니, 전쟁을 통해 보이는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많은 경험을 했을 거라 예상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처럼, 생존의 본능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 악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에 기대어 악의 우월성을 얘기하기보다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인의 기질과 성향, 정치, 교육, 주변환경, 우연의 상황 모두가 다 연관성을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이제는 인간을 단순하게 편중해서 보는 천진성에서 탈피해 유기적으로 계속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시시각각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파리대왕의 우화를 통해 우리가 시사받을 점은 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존'을 무기로 무한경쟁에 돌입해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적대시하고, 전쟁을 일으켜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파괴하는 행동이 결국 자신을 비롯한 인류 모두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파리대왕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이 1954년 43세의 나이에 출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고, 이후 그는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2013년에는 실제로 영국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문서 중에 1983년 세계의 냉전 분위기로 핵전쟁의 시나리오를 예상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국민 연설문이 있었다고 한다. 여왕이 실제로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아니나, 냉전시대의 엄숙한 분위기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계의 상황을 그려봤을 때 인간의 본성과 문명, 인류의 공존을 그린 파리대왕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고전으로 남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 윌리엄 제럴드 골딩(William Gerald Golding) 

  •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
  • 1954년 파리대왕 출간 / 1980년 바다 3부작 [지구의 끝까지] 첫 번째 소설 통과의례로 부커상 수상
  • 1983년 노벨상 수상 / 1988년 기사 작위 수여 받음 


 
내가 읽은 민음사의 파리대왕은 2010년 1판 44쇄로 펴낸 책이었는데, 이때 번역가는 유종호 씨로 오래된 번역문체와 심한 오타들로 인해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다음엔 인쇄 연도와 번역문체도 좀 더 선별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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