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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세계문학

노벨 문학상 수상작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by sosobooktalk 202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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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되는 존재의 참극

 

1987년에 발표된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인간의 자유와 사랑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백인들은 노예라는 신분을 통해 인간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려 했고, 그들의 왜곡된 욕망은 소유된 흑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소설 속 주인공 세서도 자식이 침탈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자식의 미래와 죽음까지 소유하려는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세서의 이야기는 노예제도 속에서 ‘소유되는 존재’가 겪은 참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1856년 1월 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의 실화

 

P.16
" 내가 그 아이를 사랑했던 마음만큼 세지는 않아." 

 

 

『 빌러비드 』는 1856년 1월 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마거릿 가너는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신시내티로 도망쳤지만 결국 그녀를 쫓아온 노예사냥꾼과 보안관에게 쫓겨 붙잡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녀는 붙잡히기 전 자신과 같은 노예의 삶을 살게 될 아이들을 걱정해 모두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두 살배기 딸아이만 죽이게 된다. 마거릿 가너는 재판과정에서도 한 명의 인간이 아닌 도망간 노예로 취급받으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가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세서라는 인물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녀가 죽인 딸 빌러비드 (Beloved : 사랑받는 존재)를 한이 서린 124번지의 세서의 집으로 소환한다. 빌러비드는 세서가 딸을 죽인 후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이자, 흑인 집단이 동시에 겪어야 했던 노예제의 억압과 고통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트라우마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세서와 흑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P.65
" 아플 거야. 죽었다가 살아나는 건 뭐든 아픈 법이니까." 에이미가 말했다.

 

P.272
" 당신의 사랑은 너무 짙어."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결합해 노예의 삶을 가까이서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마치 죽음만이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돌려줄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의 삶은 끔찍하게 묘사된다. 여성 노예는 아이를 낳아도 기를 수 없고, 아이는 또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고, 가축처럼 취급받는 삶 속에서 여성의 모성애는 자기 살을 깎아먹는 고통에 불과했다. 모성의 지독한 사랑은 세서와 같이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같은 노예였던 폴디는 이야기한다. 이는 한 여성의 지독한 모성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삶에 깃든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이러한 고통이 같은 집단 안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P.327
백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어떻든, 새까만 피부 밑에는 예외 없이 정글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항해할 수 없는 급류, 줄타기를 하며 끽끽 대는 개코원숭이, 잠자는 뱀, 백인들의 달콤하고 하얀 피를 언제나 노리는 붉은 잇몸, 어떤 점에서는 백인들이 옳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흑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점잖고 영리하고 다정한 인간적인지를 입증하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흑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백인들에게 납득시키느라 자신을 소진하면 할수록, 흑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더 깊고 빽빽한 정글이 자라났으니까. 하지만 그 정글은 흑인들이 어디 살 만한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정글은 자라났다. 퍼져나갔다. 삶 속에, 삶을 통해, 삶 이후에도, 정글은 자라났고 그걸 만든 백인들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건드렸다. 변화시키고 바꿔놓았다. 심지어 그들이 원한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어리석고 악하게. 백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글을 무척 두려워했다. 끽끽 대는 개코원숭이는 바로 그들의 새하얀 피부 밑에서 살고 있었다. 붉은 잇몸은 바로 그들의 것이었다.

 

P.302
' 참으로 사랑하는' 그 두 마디 전부를. 너는 나에게 바로 그런 존재이니까.

 

P.384
" 그녀는 미친 게 아니었소. 자식들을 사랑했던 거지. 해치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한 짓보다 더 큰 해를 입히려 했던 거요."

 

P.447
그녀는 요구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녀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 (중략)
그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빌러비드는 단지 흑인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소유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모든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들의 슬픈 참극처럼 보인다. 작가는 흑인의 역사 안에서 빌러비드라는 존재를 통해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하고 과거를 치유해 나갔지만, 이는 인류 공통으로 뼈아픈 역사를 지닌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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